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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trange season

(12)
<햇빛 마중> 봄의 실종 “한때는 분명 만개했던 것이 왜 없었던 일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인지. 끝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. 끝이란 게 마침표 같은 점이 아니라, 양쪽 끄트머리에 또 다른 시작과 끝이 매달려 있는 선 같은 거라면, 끝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건 끝이 맞는 건지.” 문진영
<햇빛 마중> "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까. 괜찮은가요. 가만히 물어보는 일. 그리고 귀를 기울이는 일. 그러는 동안 나는 마치 햇빛을 마중하러 가는 듯한 마음이 된다. 한참을 귀 기울이다 보면 비로소 누군가의 마음이 어렴풋하게 모양을 드러내니까. 밤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듯이." 문진영, 작가의 말中
<햇빛 마중> 고래 울음 "함께 있을 때면 자주 가라앉았다. 세상은 물속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흔들렸고 반짝거렸다. 우리는 깊이,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고 그러면 결국에는 구름도 햇빛도 그저 빛의 입자로 흩어져 희뿌옇게 우리 위를 흘러갈 뿐이었다." 고래 울음, 문진영
<햇빛 마중> 토마토와 선인장 "귀밑머리가 희끗한 사람이 그렇게 되고 싶다, 고 말하는 게 좋아 보였다. 나를 포함해 다들 나는 이렇고 이런 사람이라고, 이렇게 살아왔고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고 했지 다른 게 되고 싶다는 꿈 같은 건 더는 꾸지 않고 있었으니까." 토마토와 선인장, 문진영
<햇빛 마중> 공터의 사랑 “지금을 회상할 만한 순간이 우리에게 몇 번이나 남아 있을까. 오래전 일들은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, 최근의 일들은 외려 안개 속처럼 흐릿하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.” 공터의 사랑, 문진영
<햇빛 마중> 여긴 지금 새벽이야 “다만 이제야 알게 된 건, 너와 함께 한 시간들이 조금도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. 그래, 결국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 거야. 고마워. 이렇게 충분한 기억들을 선물해 줘서.” 여긴 지금 새벽이야, 문진영
<햇빛 마중> 요가원에서 "만약 진수가 그때 연못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, 함께 흠뻑 젖어주지 않았다면, 마주 보고 웃어주지 않았다면……나는 나를 놀리는 선배들의 농담에 매번 어쩔 줄 몰라 했을지도. 결국에 나는 그 무엇도 웃어넘길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, 어쩌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,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." 요가원에서, 문진영
<햇빛 마중> 어떤 휴일 "여러 개의 화분에 여러 가지 식물들이, 계절을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내느라 분주했다. 마음이 착잡할 때면, 그 부지런한 화분들 곁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곧 기분이 괜찮아지곤 했다." 어떤 휴일, 문진영
<햇빛 마중> 눈썹달 “ 어둠 속에서 모두가 각자의 궤도를 계속해서,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. 이렇게 거의 지루할 정도로, 같은 궤도를 돌고 또 도는 것은 그야말로 우주의 이치인 거라고 생각했다. 그러니까 우리의 날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된다고 해서 그다지 의아해하거나 불행해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. 우리는 우리의 궤도를 따라 그저 이 우주을 끝없이 돌고 또 돌다가, 달 같은 위성을 만나 끝까지 함께 가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. ” 눈썹달, 문진영
<햇빛 마중> 북극의 연인들 "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녀의 양손은 어느새 솔방울로 가득했다. 또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." 북극의 연인들, 문진영
<햇빛 마중> 구여친클럽 “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도 쉽지 않은데, 그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 되기란 거의 기적 같은 일이 아닌지. ” 구여친클럽, 문진영
<햇빛 마중> 어이 “우리가 함께 걷는 동안, 계절은 우리와 관계없이 흘러갔다. 그러나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잠시 숨을 고를 때 올려다보이던 하늘,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나 얼굴을 스치던 바람 같은 것들은 오직 우리 둘만의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. ” 어이, 문진영